
△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우리 사회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높아지는 분위기다. 맛집이나 요리, 나아가 식품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한가위를 맞아 <냉장고를 부탁해>에 직접 출연해 K푸드 알림이를 자처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관심이 원료로 이어져 국내 농업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맛있는 요리는 뛰어난 세프와 요리 기술뿐 아니라 원료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수입 농산물보다 신선하면서 안전성도 검증된 국내산 농산물이 덩달아 주목받기를 바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중 가장 안타까운 품목을 꼽자면 밀이다. 밀을 원료로 한 면류 요리가 각광을 받는 지금, 정작 국산밀은 자급률 1~2%대에서 좀체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발표된 바 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2024 식품산업 원료 소비 실태조사’를 보면 K푸드 수출 1위 품목인 라면의 국산 원료 비중은 5%에 지나지 않았고 특히 밀가루의 국산 비중은 0.3%에 불과했다.
K푸드 수출액은 지난해 99억 8천만 달러로 100억 달러에 가까운 실적을 거뒀는데 그 중 라면 수출액만 12억 4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23년 대비 31% 늘어난 수출액이다.
우리나라 연간 밀가루 소비량 147만톤 중 38만 5천톤이 라면에 투입된다. 라면에 투입되는 밀가루의 10%만 국산밀로 대체할 수 있다면 연간 국산밀 생산량을 모두 소진할 수 있다고 한다. 국산밀 재고량만 6만톤이 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해 국산밀 생산량은 단 3만 7376톤으로 전년도인 2023년에 비해 오히려 27.9%나 감소했다.
밀 재배면적은 2023년 1만 1600㏊에서 지난해 9536㏊로 1만㏊ 선이 붕괴됐다. 밀 산업 육성법을 지난 2018년에 제정해 2020년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한 결과가 이 모양이다.
혹자는 국산 밀은 라면을 만들기에 적절하지 않은 품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라면 만들기에 적합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면 된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23년 면용 밀 품종으로 ‘한면’을 개발했다고 하니 보급이 제대로 이뤄질지 지켜볼 대목이겠다.
품종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국산밀을 소비자들이 찾게 만들 대책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국산밀로 만든 불닭볶음면을 세계에 선보일 수 있을까. 지난 2월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내놓은 이슈보고서에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녀름의 이수미 소장은 해당 보고서에서 “밀 생산면적과 생산량이 기후, 낮은 소득, 정부 정책의 변동 등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라며 “이러한 면적의 변화, 작황 부진은 품질저하를 불러일으킬 경우가 많다. 생산량이 많지 않기에 품질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처에게 공급하기 좋은 원료가 되려면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진다는 전제 조건부터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국산밀 생산기반이 원체 취약하다보니 소비확대에 더 장애가 된다는 의미다.
이 소장은 “정부 밀 수매비축 사업을 보면 올해 수매단가는 ㎏당 855원으로 지난해 ㎏당 957원보다도 낮다”라며 “생산비도 충당할 수 없는 현실에 수매단가 인하에 대해 현장 농민 누구도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밀 수매단가의 인상은 밀 생산기반의 유지확대를 위해 꼭 필요하다. 또한, 밀 전략작물작불금의 추가 확대도 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처가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원료가 되려면 생산기반부터 안정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생산기반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그나마 남아있는 생산기반마저 흔들리고 덩달아 소비처에서 국산밀을 찾는 발길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차 밀 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수립할 때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네니아 웹진 2025년 10월